행복 10계명으로 풀어본 혁신학교 이야기(이준범, 201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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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300회 작성일 14-05-27 13:20본문
행복 10계명으로 풀어본 혁신학교 이야기
이준범(서울숭미초)
이번 학습 모임의 주제는 행복한 혁신학교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과 ‘혁신’이란 키워드를 가지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이 두 낱말은 사실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혁신이란 자신의 가죽을 벗겨내는듯한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지요. 고통이 따라 다니는 행복이란 말은 다소 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검색도중 ‘솔개’이야기라는 의미있는 동영상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솔개는 80년 정도를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솔개도 나이를 먹다보면 부리와 발톱이 닳고, 깃털도 여기 저기 부러져 있어 볼품없을뿐더러 사냥하기도 힘들게 됩니다. 그러면 솔개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그 모양 그대로 작고 잡기 쉬운 먹잇감만을 사냥해가며 배고픔을 겨우 면하고 살 것인지, 아니면 부리와 발톱, 그리고 깃털을 갈아서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사냥하며 힘차게 살 것인지 선택합니다. 배고픔을 면하고 산다는 것은 자신의 노화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세월의 흐름을 겨우 따라간다는 것을 의미이고, 부리와 발톱을 간다는 것은 새롭게 변신하면서 세월의 흐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나간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혁신학교에 근무하거나 학교 혁신을 몸소 실천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분명 평이하게 교직생활을 하는 분보다 힘들고 시간이 많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혁신학교 선생님들은 그런 고통보다 더 큰 보람과 행복감을 맛본다고 합니다. 가슴으로부터 새로운 열정이 샘솟는다고 합니다. 앞에서 혹은 옆에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 선생님들을 보면 일부러 그렇게 표현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들의 목소리에 ‘가슴 떨림’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행복’이란 키워드 검색에서 나온 ‘행복 10계명’은 혁신학교와 더불어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혁신학교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 합니다. 열 가지 모두가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겠지만, 몇 개라도 실천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학교 혁신의 길에 함께 하며 솔개처럼 자신을 새롭게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번 논의는 늘 함께 노력하는 우리 선생님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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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세요. 모든 것을
학교는 목적을 위해 교사 및 학생, 학부모를 대상화하지 않아야 합니다. 프레네 교육의 불변법칙 제1조는 ‘아동의 본성은 어른의 본성과 같다’입니다. 어른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면 아이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해야 할 때 때로는 비굴함이나 참담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내심을 기르거나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정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것을 구태여 힘들게 만들지는 말아야 됩니다. 기꺼이 어려움을 감내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른과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우학교는 문제학생이라고 일컬어지는 학생들과 함께 생활담당교사가 5박6일 동안 동해까지 걸어갑니다. 학생의 발이 퉁퉁 부으면 대신 짐을 짊어지고 가는 교사, 그와 함께 가는 동안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국사봉중학교는 도로보다는 산을 택해서 갑니다. 지리산, 설악산을 오르는 동안 불평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억지로 따라가는 학생들을 묵묵히 데리고 가면서 마침내 정상에 올라 삼겹살파티를 해주는 교사들에겐 이들이 일진도 문제학생으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 맛있게 먹는 사랑스런 나의 아이들입니다. 이렇게 한다고 학교에 돌아와 개과천선을 하며 사는 것은 아니지만 점차 비행의 정도가 줄어들고, 적어도 미안해 할 줄 알게 됩니다. 같이 갔던 선생님께는 고개 숙여 인사할 줄도 알구요. 적어도 존경하는 선생님이 한 분 정도 학교에 생긴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도 이들은 문제학생이 아니라 더 사랑을 쏟아야 할 존재로 다가오겠죠.
아이들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학교에 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학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사랑하는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사랑할 만한 꺼리들이 많은 학교는 정말 오고 싶은 학교일 것입니다. 자기 이름으로 자라는 화초 한 포기, 눈빛을 마주치면 방그레 웃어주는듯한 토끼 한 마리가 있는 학교,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과 뛰어놀 수 있는 놀이공간, 몇 명이 둘러 앉아 소꿉장난 할 수 있는 모래사장 등 선생님들이 조금만 애쓰면 사랑스럽고 소중한 공간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입니다.
혁신학교에서 나무와 이야기하기, 텃밭가꾸기, 동물기르기 등을 많이 하고 있는 것도 사실 자연을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하며 마침내 인간에 대한 사랑까지도 연결짓도록 하는 것입니다. 남한산초등학교에서 아침 시간에 학교 인근의 나무를 껴안고 나무의 소리를 듣는 것도, 도봉초에서 토끼와 닭을 기르면서 생명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도 생명에 대한 사랑을 실천적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시간표만 조금 바꿔도 아이들은 재미있게 놀 수 있습니다. 블록타임의 중간 놀이 시간 30분이 아이들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중간놀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면 아이들은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답니다.
2
건강하세요. 항상
학교는 학생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사실 무상급식을 시행한 것도 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을 두루 생각한 조치입니다. ‘유상’ 급식 속에서 ‘무상’으로 급식을 한다는 것이 아이들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했을 겁니다. 명절 날, 가난한 집안의 아이가 부자 친척집에 가지 않으려던 마음, 그래서 명절이 돌아오는 것이 정말 싫었던 아이처럼 무상은 시혜만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학교는 정상적인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와주어야 할 책임도 갖고 있지만 부족한 한사람도 상처 받지 않도록 살펴볼 책무도 있습니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이 교육에서조차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교육소외를 극복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학습 부진, 정서적 소외 현상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선생님들의 지혜를 빌려봤으면 합니다.
학교는 모든 아이들이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특별히 경계해야 합니다. 학교폭력을 논의하다보면 정확히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서로에게 원인을 제공한 면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폭력이 발생한 후 처리하기가 어렵습니다.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은 것부터 경계를 분명히 세워야 합니다.
혁신학교인 보평초등학교는 3무 3행을 실천합니다. 교사-학부모-학생이 지켜야 할 3무3행의 구체적 내용은 함께 만들어가고 함께 지킵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행복한 교실을 위한 3행으로 존댓말 사용하기, 눈 마주침으로 아이들과 아침열기, 사제가 동행하여 독서하기가 있습니다. 원래는 학교와 학부모가 지켜야할 3무3행으로 출발했는데, 다양한 개념으로 확장한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든 학교 혁신의 성공을 위해 최소한 지킬 것을 정해 놓음으로써 안전하고 건강한 학교를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자연과 함께 하는 활동을 하다보면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산에 가까운 학교는 산속의 동식물을 관찰하고 노래하면서, 들이 가까운 학교는 들판의 곡식을 심어보고 가꿔봄으로써, 도심의 학교는 자신의 화분을 가꾸는 과정에서 정서적 안정을 얻고, 신체적 활동성을 증진할 것입니다. 특히 서울형 혁신학교에서는 문화 예술 체육 영역을 강조하는데, 이는 생태교육을 강조하는 농어촌학교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강명초등학교는 조소-목공-창의음악-수공예를 중심으로 문예체 활동을 합니다. 4학기 동안 이들 활동을 돌려가며 하는데 학기 마지막에는 잔치를 열고 활동한 결과를 발표합니다. 열심히 익히고 잔치에서 발표하며 전시하는 아이들에게 행복한 표정이 감도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3
친절하세요. 누구에게나
00고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은 언제나 교문에서 웃으면서 아이들을 맞이합니다. 이 학교에는 상처받은 아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눈길과 함께 이름을 불러주면 아이들은 처음에는 쭈볏쭈볏하다가 마침내 선생님에게 인사를 합니다. 자주 늦는 아이들은 교장선생님이 그 이유를 알아봅니다. 밤새 알바를 하느라 졸린 눈으로 등교할 수 밖에 없는 아이에겐 알바 시간을 조금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이야기합니다.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어울리다가 지각을 하는 아이에겐 운동장을 같이 돌면서 선생님이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고,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학생들은 스승의 날에 교장선생님의 그림을 커다랗게 그리고 사랑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선생님이 달라졌어요’에서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은 무기력한 자신의 수업에 대해 컨설팅을 의뢰합니다. 컨설턴트는 수업하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아이들과 마주하지 않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선생님이 아무리 따뜻한 마음을 가졌더라도 선생님의 눈길이 아이에게 미치지 못할 때 아이들은 선생님이 무관심하다고 믿습니다. 컨설턴트와 함께 자신의 수업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면서 교사는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곤 컨설턴트가 제안한 아침에 컴퓨터 보지 않기를 받아들입니다. 아이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인사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마디 말이라도 건네면서 공책검사를 합니다. 수업에서도 컴퓨터를 클릭하는 대신 아이들과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니, 아이들과의 관계가 좋아집니다. ‘우리 선생님이 친절해졌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늘어납니다. 마침내 교사는 자신감이 커지고, 무기력해 보이던 수업이 활발해집니다.
맨손수업을 지양하라고 하면서 컴퓨터자료는 수업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 자료를 이용하더라도 눈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향해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컴퓨터모니터를 보고, 학생은 TV를 보면 교사와 학생의 눈은 마주치지 않습니다. 눈이 마주치지 않으면 만남과 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비록 말이 오가고 있지만 그 말은 공허할 따름입니다.
수업 혁신을 꿈꾸는 선생님들은 아이들과의 관계를 증진하는데 노력합니다. 수업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호혜적 대화와 만남을 통한 배움의 관계를 조직하는 것입니다. 교사도 아이들에게 친절해야 하지만, 아이들끼리도 친절한 관계를 회복해야 즐거운 가운데 배움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배움이 일어나는 교수학습 방법을 택하면 호혜적 관계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유럽에서 칠판이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학생에게 등을 보이지 말고, 학생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학생 하나하나에게 배움이 일어나도록 직접 돌아다니라는 것이지요. 아이들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될 때 아이들은 선생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삼정중학교에서는 배움의 공동체 수업 방식을 도입한 후, 서로 눈을 마주치니 자는 아이도 줄어들고, 대화를 자주 하니 왕따도 사라집니다. 사고를 자주 쳐서 왕따를 당하던 아이가 있었는데 애들이 먼저 다가가서 뭘 알려주려고 하고 수업에 참여하자고 했답니다. ‘배워서 다시 가르치기’를 하면서 모르는 걸 물어보는게 당연한 교실, 서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답을 찾아가는 교실이 된 것이지요.
어떤 고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수업 참여가 너무 저조해서 선생님들은 수업할 의욕도 상실할 정도였습니다. 해결 방안을 모색하던 중 00교과연구회의 발표 내용을 보고 협동학습 방법이 대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곤 협동학습의 한 방법인 직소 학습을 적용한 수업 형태를 도입합니다. 아이들은 각각의 과제를 부여받고 모집단-전문가집단-모집단으로 오고 가면서 발표와 토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책상에 엎드려 잘 시간이 없었습니다. 물론 과제를 해오지 않으면 전문가집단에서 발표를 할 수 없겠죠. 대신 전문가집단에서 다른 친구들의 발표를 받아 적은 후 모집단으로 돌아와 어설프게나마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점차 아이들은 과제를 해오는 비율이 높아졌고, 대화의 질도 좋아졌습니다. 학습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니 학급 및 학년 전체의 학업성취도도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기 반에 누가 있는지, 그가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죠. 같은 학급이면서도 잠만 자다 가니 이름도 얼굴도 제대로 몰랐던 아이가 드디어 대화를 나누는 친구가 된 것입니다. 수업 방법을 바꾸니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한 학급이 된 것입니다.
혁신학교는 학부모와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합니다. 학부모를 위한 교육과정 설명회를 야간에 실시하거나, 운동회를 토요일에 하는 것은 조금이나마 더 학부모에게 친절하게 다가서기 위한 몸짓이지요. 우리네 일반학교에서도 상담주간에 학부모가 편한 시간을 택해서 상담하도록 하는 것은 교사의 노동시간이 좀더 늘어나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학부모에게 친절하기 위함이지요. 저도 예전 학교에서 아버지들과의 만남시간을 야간에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 무관심한 아버지들을 조금더 학교에 가깝게 다가서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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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하세요. 어떤 일에나
혁신학교는 도전입니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삶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어느 것이든 도전할 가치가 있습니다. 하기는 요즘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용감한 행동이겠지요. 더군다나 자신을 혁신하겠다라는 것은 더더욱 용기있는 도전입니다.
혁신학교는 교육과정 재구성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레네식 교육방법을 도입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쿠와 드 네프’, 학급신문 만들기, 자유글쓰기 등을 위해 일부 교과의 내용을 주제를 중심으로 통합운영하고 있습니다. 학급신문을 만들어 다른 학급이나 학년, 나아가 다른 학교까지 교류한다는 것은 자신의 학급 학급을 공개하는 용감한 행동입니다. 다른 이들과 교류하면서 조금 더 진지하게 작업할 수 있고, 정성을 들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아이들의 생각을 읽을 수도 있지요. 삶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입니다.
배움의 공동체나 프레네 교육, 발도로프 교육을 도입하여 자신의 수업에 적용하는 것도 용감한 행동입니다. 기존의 수업방법을 갈고 닦아 더 멋진 수업을 전개하고자 하는 마음도 소중하겠지만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는 정신은 더욱 소중합니다. 그러나 배움의 공동체든 프레네 교육이든 먼저 실천한 교사들의 수업 방법만을 따라 익히고 이를 그대로 적용하려고 한다면 아직은 2% 부족합니다. 프레네는 수업방법을 교조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맡은 학급 아이들의 상황에 따라 수업방법도 달라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수업방법은 고정된 틀을 고집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수업은 창조의 과정이고 예술이라고 합니다.
더욱 용기있는 행위는 자신의 수업을 열고 동료교사들의 비평을 아낌없이 들으려는 자세일 것입니다. 그러려면 동료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그 신뢰는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동료애에 기반한 신뢰입니다. 동료애는 학습동아리에 함께 하고, 수업 혁신 방향에 동의하고 노력하는 사람들 사이의 정과 사랑입니다. 동료들과 함께한다면 용기백배할 것입니다. 초등학교는 동학년을 학습동아리로 전환하는 것도 생각해봐야합니다. 학년 교육과정을 고민하고 교수-학습 과정안을 서로 검토․수정하여 수업에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또 수업의 방향과 참관의 방향도 논의해야 하겠지요. 학급 아이들의 특성을 미리 말해 주고, 몇 명을 중심으로 관찰하거나 한 모둠을 집중 관찰하는 등, 배움이 일어나는 과정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도록 의견을 나눠야 합니다.
우리 서울에서 교무행정지원사를 배치한 것은 잘 아시다시피 교원의 업무정상화를 위한 것입니다. 지원적 성격의 업무를 행정지원사가 수행토록 하고 교사들은 본질적 업무, 즉 교육과정 운영과 수업, 그리고 생활지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그래서 각 학교에서는 교사들에게 수업 공개를 더 할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뜻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용기가 더 필요한 시기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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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하세요. 부모님께 (존중하세요. 모든 분께)
혁신학교가 일반학교보다 더 효도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다만 혁신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자식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더불어 행복해 합니다. 각종 학교 행사에 참여하는 것에 적극적입니다. 이런 소문에 의해 강명초나 보평초의 학생수는 혁신학교의 기준인 학급당 25명을 이미 넘어섰고 30명도 훌쩍 넘긴 상태입니다. 아이들이 즐거워한다는 소식을 듣고 학구위반까지 하면서 전학을 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오히려 혁신학교를 못하겠다라는 소리가 나온답니다. 소외받고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이들의 학부모들이 조금이나마 더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이들 학교로 모이기도 합니다. 혁신학교는 당장의 성적보다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아이들이 꽃을 피우도록 보살피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학교에서의 행복을 설명할 때는 오히려 효도보다는 존중과 존경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혁신학교인 선사고등학교는 학교 교칙을 만드는 대신 생활협약을 만들었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 뒤 학생들끼리 협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고 오랜 토론 끝에 학생협약을 만든 것이지요. 생활협약은 학부모, 학생, 교사의 약속으로 발전하여 3주체 공동협약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협약 내용에는 부모의 경우 ‘자녀의 의사결정권(진로 등)을 존중한다’, ‘학교 일을 뒤에서 비난하지 않고 공식적인 통로로 의견을 개진한다’, 교사의 경우 ‘학생의 자율성을 존중한다’,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감정적이고 모욕적인 언사를 하지 않는다’, 학생의 경우 ‘감정적 대꾸보다는 타인의 말을 존중하고 이성적 대화를 예의바르며 소신있게 한다’, ‘학생 상호간에 욕을 하지 않고, 존중하며 친절한 태도로 대한다’라는 약속들이 있습니다. 이런 협약은 공개적인 약속으로 수차례의 회의를 거쳐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실천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율적인 약속과 더불어 반드시 지켜야 할 것-8조 법금-도 학생들과 더불어 제정하여 이를 위반하였을 경우는 강력하게 처벌함으로써, 도덕과 법의식을 함께 높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권위적 어른의 역할은 점점 왜소해지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지하철의 막말녀가 등장하는 것도 어른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단초입니다. 이젠 권위적인 말이 통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배려와 존중의 힘이 권위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나를 존중해달고 하기 전에 타인을 존중해주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예쁜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우리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의 종족을 보전하고 널리 퍼뜨리기 위한 몸부림이지요. 이타적인 행위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기적인 본능에서 나오는 행위입니다. 우리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 존중을 받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이 클수록 타인을 더 배려해야 하겠지요. 결국 타인에 대해 존중을 잘 하는 사람은 자신이 존중받고 싶은 이기적 유전자가 더 많이 작동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즉 자존감이 큰 사람만이 타인을 더 존중할 수 있고, 그 결과 자신이 더 존중받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가정과 학교에서 가르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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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세요. 살아있는 날까지
혁신을 꿈꾸는 사람들은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2000년 초 남한산초가 폐교 위기에 놓였을 때, 학교를 살리기 위해 뭉쳤던 교사들은 지역주민들과 함께 학교를 살리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실천하느라 엄청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남한산초가 학교 회생에 성공하자,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남한산초를 방문합니다. 그리곤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지요. ‘저것은 남한산초 사람들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야, 우리는 할 수 없어’, ‘남한산초가 어떻게 성공했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알아보자. 남한산초 선생님을 우리 학교에 모셔서 컨설팅을 받아보자’, ‘결과물을 보여주세요. 관련 파일도 다주면 좋겠네요.’
지금도 혁신학교에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혁신학교 선생님들을 초빙하여 강의를 듣습니다. 그리곤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다양한 반응을 보입니다. 저도 조현초를 방문하여 디딤돌 학습의 자료를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파일을 받지 못하고 샘플만 받았지요. 왜냐구요? 혁신학교 선생님들은 결코 저작권을 주장하기 때문에 주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만든 자료가 늘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년살이를 하고 성찰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삶이나 교육에 영향이 적었던 것을 수정보완합니다. 어떤 때는 전면 개편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교과서에 나온 낱말익히기를 했는데 삶과 크게 연결짓지 못하였기에 아이들이 지루해합니다. 크게 반성하고 논의 끝에 그 다음부터 고학년에게 가치사전을 만들도록 했지요. 가치사전에 대해 어떻게 성찰을 했는지는 이후에 듣지 못했기 때문에 잘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수정보완하느라 또 많이 노력했을 겁니다. 결국 혁신학교의 자료는 그 학교의 상황에 알맞게 끊임없이 수정해나갑니다. 아이들의 삶과 교육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 교사의 숙명입니다. 그래서 교사를 ‘반성적 실천가’ 또는 ‘반성적 전문가’라고 부릅니다.
선생님들이 이 자리에 함께 계신 것도 노력의 일단입니다. 시간을 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해결방법을 찾고 있지 않으십니까? 행복한 학교 혁신을 꿈꾸며 자신의 현실에 비추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계십니다.
때론 혁신학교 선생님들이 저녁 늦게까지 회의를 하고 연구합니다. 물론 매일같이 그렇게 하지는 않지만 집단적 성찰이 필요할 때,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할 때 우리학교 아이들의 상황에 적합한지, 아이들의 발달에 알맞은지 검토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냅니다. 또 좋은 수업을 위해 수업공개후 집중토론을 하기도 한답니다. 저는 작년부터 여섯 번의 혁신학교 네트워크에 참가했습니다. 2~3개월마다 저녁 6시에 만나 김밥 한줄 먹고 밤 10시 전후까지 이어지는 워크숍에서 혁신학교 선생님들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각각의 학교에서 진행하는 주요 과제-학교 운영, 교육과정, 수업 등-의 혁신의 상황과 정보를 공유하며 자신의 학교와 다른 학교의 차이점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계속 됩니다. 때론 논쟁도 이어집니다. 이들의 논의가 얼마나 진지한지 중간에 말을 끊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의 학교 고백도 가끔 들을 수 있습니다. 잘 되는 이야기, 잘되지 않는 이야기까지 합니다. 노력은 했으나 잘 진행되지 않는 이야기를 들으면 같이 안타까워 합니다. 옥상텃밭을 만들기 위해 흙을 퍼올리고 거름을 만들어 올리면서 수확의 부푼 꿈을 꾸다가 실패한 이야기가 가슴에 남습니다. 나름 농사를 지어봤다는 선생님이 실패를 하였으니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교육은 아이들에겐 단 한번의 과정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용인해서는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교육과정을 통합하고 새로운 수업방법을 도입할 때는 더 많은 논의를 해야 합니다. 시행과정에서도 서로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더 나은 교육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교사를 마치는 그날까지, 그리고 살아있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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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하세요. 언제까지나
가르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온전성(성실성)을 담아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체성(identity)을 아이들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흔히 모델링이란 말과 비슷하겠지요. 담임을 맡은 1년동안 아이들은 담임교사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교사의 언행은 물론 그 이면에 작동하는 마음도 닮아가겠지요. 성실성이란 당연히 최선을 다하는 마음자세입니다. 최선을 다하지만 아이들의 삶과 다른 방향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합니다. 특히 교사의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거나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면 그의 성실성은 아이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수도 있습니다. 만일 수단과 관계없이 목적을 달성해도 된다라는 생각을 가진 교사가 있다면 그가 최선을 가르쳤다라고 해서 진실하다고 인정해줄 수 있을까요? 교사의 정체성이 무엇이어야 하느냐라는 말에 제가 답할 수 있는 것은 여기나온 ‘행복 10계명’을 위해 진실하게 행동하려는 마음이라고 중층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삶은 ‘나’와 ‘너’, ‘그것’과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진실하다는 것은 아이들을 ‘그것’으로 보지 않고 ‘너’라고 인정해주며 ‘나’와 동등한 입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이질적인 아이들을 동질화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이 ‘너’에 대한 자세입니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아이들을 ‘그것’으로 보고 제품처럼 동질화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의 능력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모두다 같은 출발점에 세우고 결과가 같기를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봅니다. 수십년 동안 똑같은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고 기준 이상의 품질을 요구했지요. 100점이 되기 힘든 아이들을 닦달하면서 머리 좋고 가정좋은 아이처럼 되길 끊임없이 요구했습니다. 물론 선생님으로서 그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그렇게 했을 겁니다. 선생님들의 노력에 따라 아이들의 성적이 오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아이들이 상처를 입지는 않았을까요? 선생님의 진실을 몰라주고 노력하지 않는 아이들에 대하여 교사들은 몹시 화가 나기도 하고, 체념하기도 했을 겁니다. 그러나 ‘정말 공부 잘 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선생님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는 아이들의 참담함을 우리는 진실로 헤아려 보았을까요?
지금은 지식의 양으로 승부를 걸던 산업화시대가 아니고 개인의 다양한 능력이 요구되는 정보화 시대입니다. 여전히 공부가 유효한 수단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아이들의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조벽교수는 정보화 시대 교육의 목적은 ‘알 수 있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지능 뿐만 아니라 태도, 관심사, 가치관, 습관, 인성, 리더십 등을 다루는 정서적이고 심동적인 영역도 고루 갖춘 사람입니다. 아이들을 ‘그것’이 아닌 ‘너’로 봐줄 때, 아이들의 다양한 능력을 발견하고 성장시켜 줄 수 있습니다.
혁신적인 교사들은 학교가 아이들의 삶의 일부분임을 인정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삶과 좀더 일치하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수업에도 반영합니다. 얼마전 혁신학교 워크숍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학년 아이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가르쳤더니, 일상적으로 쓰는 ‘그래서’ 자리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넣더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할 때는 ‘그래서’라는 말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하는데 국어시간에만 문장의 맥락과 상관없이 이어지는 말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넣어 쓰더랍니다. 1학년이니까 그렇다고 치부할까요? 그래서 제안을 받았습니다. 1~3학년까지 받아쓰기를 할 때 단순히 국어의 어휘를 받아쓰게 하지 말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말,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을 쓰게 하자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삶’과 조금 가까이 선 느낌이 들지 않으십니까?
혁신학교에서 협력 활동을 강조하는 것도, 우리 사회의 흐름이 이미 경쟁보다는 협력체제를 요구하고 있고, 경쟁보다는 협력할 때 더 삶이 풍부해지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똑같은 능력을 가진 자들끼리의 협력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협력이어야 합니다. 이질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협력하여 동질화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는 좁혀나가되 자신의 특성이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직장을 구하는 사람이 시험에 통과하려면 경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새로운 시험 개념은 단순한 지식위주의 시험이 아니라 협력 시스템에 적응할 사람을 뽑는다는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학교에서 협력적인 학습 방법을 통해 공부하며 활동한 사람이 오히려 더 경쟁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부탄의 4대 국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1972년 즉위, 2006년 권력이양-입헌군주제)는 1974년에 국민총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 GNH)를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삼겠다라고 발표하였습니다. 국민들이 행복하려면 무한 경쟁에서 승자가 부를 독식하고 패자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함께 연대하는 것이며, 국가는 경제적 성장보다는 건강·시간 활용 방법·생활수준·공동체·심리적 행복·문화·교육·환경·올바른 정치 등 9개 분야에 더 힘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꾸준히 실천하였습니다. 마침내 왕의 권력조차 국민에게 넘기며 그의 소박한 꿈을 국민들이 이어나가도록 하였습니다. 이 GNH는 국제기구에서도 중요한 지표로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 나라는 OECD 34개국 중에서 GNH가 26위(2006년 영국조사에서는 부탄 9위, 일본 90위, 한국 103위, 2011년 UN조사 한국 56위)였습니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부탄, 부자나라이면서 행복수준이 거의 바닥인 나라, 과연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8
겸손하세요. 모든 일에
프레이리는 진보적인 교사는 겸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겸손은 용기이고, 자기확신이며 자기나 타인에 대한 존중이다. 모든 것을 아는 사람도 없고, 모든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모든 이에게 귀기울이는 것은 민주주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겸손의 보조하는 말은 상식과 자세이다. 발달적인 아이들과 상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
즉, 겸손이란 힘있는 자에게 자신을 낮추는 비굴함과 다릅니다. 겸손은 자긍심이 높은 사람의 특성입니다. 잘 익은 벼가 고개를 더 숙이는 것처럼 자긍심이 높은 사람은 힘있는 사람에게는 당당하게, 힘없는 사람에겐 정중할 정도로 겸손함을 유지합니다. 대개의 경기의 시상식을 보면 1등이 가장 높은 단에 올라섭니다. 그리곤 금메달을 목에 걸 때 가장 많이 고개를 숙입니다.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더욱 겸손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것이 아닌가 합니다.
겸손은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고, 자신의 의견을 접을 수 있다는 열린 마음입니다. 겸손은 ‘경청(傾聽-귀 기울여 듣기)’을 기본으로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공감하고, 그리고 수용하는 자세이지요. 경청의 법칙에는 1:2:3의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1분 말하면 2분을 듣고, 세 번 맞장구를 치는 것입니다. 그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줄이고 70%시간을 듣다보면 겸손의 마음이 나오겠지요.
학교에서 협력적 수업을 강조하는데 이런 수업의 기본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호혜적으로 귀기울여 듣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둠활동을 할 때, 초기에는 각각의 역할을 정해주는데, ‘칭찬이’를 두기도 하지요. 일부러 칭찬을 많이 하여 학습 분위기를 좋게 하고 경청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몇 개월 정도 지나 모둠활동이 정착되었다고 판단하면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자연스럽게 각자의 역할이 정해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역할이 바뀌기도 합니다. 물론 경청과 맞장구는 수시로 이루어지는 것이구요.
9
밝게 웃으세요. 슬플 때도 웃음 가득~
웃음이 행복의 중요한 요소임을 잘 알고 계시겠지만, 유독 한국은 외국관광객이 보기에 웃음이 적은 나라라고 합니다. 마술사가 공연을 해도 공연에 빠져들기 보다는 마술의 트릭을 잡아내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어 마술사들은 한국공연이 힘들다고 합니다. 외국 사람들은 조금만 웃겨도 마구 웃는데, 우리들은 어려운 세월을 뚫고 지나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웃음이 적은 듯합니다. 웃음이 적다라는 말은 늘 긴장하고 산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혁신학교 선생님들은 늘 긴장하며 사는듯해서 마음이 짠합니다. 뭔가 잘해야 된다는 강박감도 있는 듯 합니다. 서로 호혜적인 관계를 가지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호혜적 관계가 그리 쉽지는 않은가 봅니다. 오히려 아이들은 모둠에서 토의하면서 무엇이 좋은지 깔깔깔 거리고 웃지만, 선생님들은 긴장합니다.
아마 이것은 지금 선생님들 사이에서 창조적 갈등이나 학습혼돈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창조적 갈등이란 흔히 다양성을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합니다. 자신이 가르쳐온 방식대로 가르치거나 평소 직장인으로서 교직 생활을 한다면 갈등이 일어나지 않겠지요. 그러나 학습동아리에서 다양한 사람과 소통해야 하고, 다양한 학습 방법을 수용하면서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갈등이 일어난다는 것은 기존의 자아와 새로운 자아의 충돌입니다. 다른 이와 소통하고, 다른 방식에 내 마음을 열어 놓으면서 기존의 자아는 갈등에 휩싸일 수밖에 없지요. 갈등의 끝은 기존의 자아가 새로운 자아로 바뀌거나, 아니면 기존의 자아에 상처만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창조적 갈등을 지혜롭게 맞이하고 극복하여 새로운 자아,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한 사람은 넉넉하게 웃을 수 있고, 가슴떨림을 더 많이 느낄 것입니다. 그동안 살아온 방식에 비교해서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새롭게 변신해야 하거나, 아니면 상처를 입기 싫어서 혁신의 길에 동참하지 않고 있습니다.
학습혼돈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나비 효과’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는 복잡성과학에서 말하는 학습혼돈이란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입니다. 학습혼돈이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혼돈 상황에 있던 지식은 스스로 조직되고, 공진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지식으로 창발합니다. 카오스(혼돈)가 극대화되지 않으면 그냥 평범한 지식의 연장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교육과정이 7차까지 바뀌고 다시 수시교육과정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생님들은 개의치 않습니다. 5차에서 시작한 사람은 5차, 6차에서 시작한 사람은 6차의 방식대로 줄곧 가르치고 있습니다. 새로운 교육과정을 익힌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 갈등과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도로 가나 모로 가나 아무튼 서울만 가면 된다라고 생각하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지요. 앞으로 2015년 PISA 테스트에서 협력적 평가를 한다고 하는데, 가림판으로 가리면서 시험을 보게 한 우리들로써는 이를 어떻게 수용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변화, 교육의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점점 더 웃음이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의 흐름을 놓치거나 교육 본질에 충실하지 않는 사람이 유머가 넘친다고 해서 행복할 수 없습니다.
혁신학교 교사들의 얼굴에서 긴장감을 찾아볼 수 있다면, 그는 아직 창조적 갈등과 학습혼돈 속에 있는 것입니다. 넉넉한 웃음으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있다면 그는 혼돈과 갈등을 극복하고 혁신학교만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습혼돈을 통한 새로운 지식의 창조는 교실 학습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수업이 재미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도전할 수 있는 과제를 부여받지 못해서 그렇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수업과 교육과정의 혁신에서는 활동적이고 표현적인 과제를 많이 포함합니다. 특히 한 차시의 수업에 적어도 한 차례는 아이들의 지적 수준에 비추어 약간 어려운 과제, 즉 도전과제를 부여합니다. 자신의 삶과 사회 현상을 반영할 수 있는 문제는 아이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하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10
잊지 마세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학교 혁신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학습동아리를 만들거나 동학년이 중심이 되어 혁신의 길로 가려면 동행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함께 새로운 변신을 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을 챙겨야 할 사람이 우리입니다.
얼마전 교육감은 혁신학교를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오히려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힘을 준 사람들을 거론했습니다. 바로 학교 현장에서 묵묵히 노력하는 선생님, 그리고 혁신학교 예산지원을 하도록 노력한 교육의원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적극 지원해준 학부모들을 꼽았습니다. 자신의 어려움을 내세우기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지원해준 사람들을 떠올린 것입니다.
혁신학교 학부모들은 학교 혁신에 애쓰는 선생님들의 진실을 알아주곤 웬만한 문제는 스스로 해결한답니다. 요즘 작은 것조차 손해보지 않으려는 부모들 때문에 학교 폭력문제 등을 해결하기가 정말 어려운데, 거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이야기에서 어떤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합니다. 나를 사랑하듯 ‘너’를 사랑합니다. 잊혀졌던 관계성을 회복합니다. 그 관계가 처음에는 힘들지 모르지만 조금씩 마음을 터놓고, 사랑하는 마음을 비추면 모두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평초와 같은 사랑을 원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아껴주며 길게 가는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학습 동아리에 모이신 선생님들, 오늘 한 자리에서 정담을 나누듯 늘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크게 웃어줍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영원히 잊지 맙시다.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 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실천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요? 결국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지요. 혁신학교라고 지칭한 것은 어찌 보면 우리가 그동안 추구하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행복한 혁신학교 이야기는 좋은 교사로 살기 위한 나의 이야기로 환원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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